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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_작업노트

[작업노트]01.뼈대 하나

by catking2002 2023. 4. 14.

졸업전시를 한 게 벌써 8년쯤 지났다. 엊그제 같다는 말이 진짜일 줄이야. 졸업작품을 그릴 때처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체계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여전히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낮시간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스트레스를 술로 풀지 않는다는 점? 그것 뺴곤 똑같은 일상이다. 주변 환경이 바뀐 것도 있네. 안정적인 작업실과 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재료들이 있겠다.

유화 작업을 할 땐, 날파리가 많은 여름 환기를 시키고 싶어도 벌레가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에 붙어버릴까 창문을 꼭 닫았었다. 추운 겨울날 칼바람이 매서울 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가며 그림이 빨리 마르게 했다. 내 몸보단 그림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요즘은 그림보다 내 몸이 더 중요하다.
종이와 캔버스에 작업을 하다가 디지털로 재료를 옮기고 나서 좋은 점은 독한 재료를 가까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손에 물감이 묻어 수시로 씻어야 하는 일도 없다. 동양화든 서양화든 붓관리를 꽤 하는 편이었어서 붓세척만 40분가량 썼었는데, 아이패드로 작업하는 요즘은 너무너무 편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방금 그린 터치를 지울 때도 손가락 두 개로 툭치면 된다. 기술의 발전이 그림 그리면서 건강을 해치지 않게 해 주어 좋다. 

오늘 글을 쓰게 된 것은 기록을 위함이다. 작업을 하면서, 전시 말고 페어에서 새 그림을 보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정한 성공의 척도와 만족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님 혹은 사장님, 대표님으로 불리면서 인사치레로 칭찬과 좋은 말을 들으면 혼란스럽다. 그리고 아쉬운 점과 부족한 점을 들어도 혼란스럽다. 타인의 평가 앞에 너무 흔들려도 안되고 귀를 완전히 닫아도 안된다. 그래서 가끔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그런데 이 생활도 몇 년 지나고 나니, 알겠다. 내 맘대로 하면 된다.

아직 내 그림의 방향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아서, 컨셉이 불명확해서 그런 말들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흔들린 이유도 누구보다 내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한정된 시간과 다가오는 기회에 목표를 세우고 움직인다. 최근엔 큰 현수막에 가득 채울 그림을 완성하여 페어를 성사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 목표점을 위해 열심히도 그렸다. 내가 정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막 크게 다가오는 만족감은 없었다. 너무 바빴고, 그 순간이 찰나여서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 경험은 너무나도 단단하고, 견고하게 세워진 뼈대가 되었다. 참 세우기 힘든 뼈대였다고 기억한다. 어떤 그림체를 가져가고 어느 방향으로 그려낼 것인가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적어도... 올해 어디까지 그려낼 것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너무 욕심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흥미를 잃어, 멈추는 그림도 참 많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무 그림이나 무턱대고 시작하면 안 된다. 시간을 엄청 잡아먹어 버리니까. 차라리 이 시간에 게임이나 할걸... ㅋ

앞으로의 작업에 지금처럼 일년에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의 뼈대를 세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안 세워지면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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