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때,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하는 소설책이다. 주인공은 디안이란 여성으로, 세상에 가장 빛나는 자신을 무척 사랑한 마리의 딸이다. 마리는 디안을 낳기 전까지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고, 디안이 태어남과 동시에 <이제 내 이야기는 끝이야. 이제부턴 네 이야기야>라는 말을 한다. 디안은 엄마를 여신이라 칭하며 끊임 없이 엄마를 이해하려 하고 여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코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어쩌다 마리의 꿈 속에 디안이 죽어버렸는데 그 밤 중에 헐레벌떡 디안을 안고 다행이라며 다독이던 그 단 한 번이 여신의 따스한 처음이자 마지막 포옹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엄마의 두번째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고, 남동생의 탄생에 처음보는 엄마의 미소와 사랑을 보고 첫 번째 절망을 한다. 그리고 남동생은 죄가 없음을 되새기며, 딸에게 질투를 느끼는 엄마를 다시 한번 이해하고 용서하며 지낸다. 그러나 엄마의 세번째 출산에서 여동생이 태어났고, 여성임에도 자신처럼 엄마를 닮은 여동생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그녀의 모습에 절망하여 버린다. 디안은 여전히 아이였지만, 다 커버렸다.
소설은 디안의 성장을 담았다. 단순히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대학에 가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만난 엄마 또래의 교수와 가까운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고 선망하던 교수와 가까워질수록 디안은 그녀의 손발이 되어간다. 교수는 디안의 결핍을 채워주지만, 다른 쪽을 썩게 만드는데 이 걸 알면서도 때가 될 때까지 두는 디안의 묘사가 무척 흥미로웠다.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사랑은 너무 지나쳐도, 모자라도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다. 위에 쓴 내용엔 모자랄 경우 사람을 망치는 것만 적어 놓았는데 마리의 셋째 딸이 엄마에게 받은 넘치는 사랑이 아이를 어떻게 망치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결말까지 아주 맘에 드는 소설이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하고 책장에 두었던 책인데 임신을 하고 시간이 많아지니(입덧 땜에 작업을 올스탑한 상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나름 좋은점?
그냥 가볍지만 차갑고 약간 자극적인 소설을 원하면 읽어볼만 하다.
너의 심장을 쳐라! 제목도 표지도 뭔가 알싸함이 남는 그런 책이돠.
위까지가 1차로 썼던 글이었다. 최근에 다시 이 책을 펼쳐 보았는데, 주인공 디안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시 눈에 들어오더라. 디안은 자신은 엄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끝엔 마음으로 낳은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저번에 읽었을 땐, 디안이 엄마가 되는 것으로 결말이 끝나는 것에 별 생각없이 넘어갔는데 오늘은 의미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어린시절부터 내 엄마는 나 땜에 자기 커리어가 끝났다고 입만 열면 그런 모진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결혼전에 잘 나갔는데 나를 가지면서 자기 인생이 끝났다고 끝없이 말했었다. 나는 그런 말에 서서히 말라갔던 것 같다. 엄마한테 내가 죄인이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혹시 내가 아이를 가지면 나도 끝인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결혼을 해보니 엄마가 말한 결혼생활과 나의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달랐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엄마는 말했었다. 그런데 내 남편은 온전한 내편이 되어주었다. 엄마는 결혼하고 생기는 시댁식구들은 '시'자 식구라고 했다. 자기 밖에 모르는 군집이라고, 그러나 내 시집은 나에게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고 힘들 때 쉬어가도록 차 한잔을 건내주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말에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남편은 한국에 두고, 나 혼자 걸었다. 정말로 여자의 인생은 아이를 가지면 끝이되는 건지. 결혼생활을 해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엄마의 말을 너무 믿었고, 너무 오랫동안 그녀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내 인생이 엄마의 말처럼 실현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자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그때 그리고 쓴 그림으로 [까미노 여행 스케치] 책을 쓴 것이다.
그 후로 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임신을 했고, 하루하루 커가는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아이의 태동이 느껴지면 신기하고, 입덧으로 토덧을 했었지만 아이가 미운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내 엄마는 나에게 그런 모진 말을 했을까? 엄마가 되는 과정인 지금쯤이면 이해되지 않던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의 심장을 쳐라] 소설에서 디안이 수많은 청혼을 받았지만,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어쩌면 나도, 디안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다행히도 나는 좋은 짝을 만나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심리적 안정,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찌 삶이 모두 내 편에 유리할 수 있겠는가? 어찌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상황이 어렵고 요상할 때도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네, 그럼 파악해두고 다음엔 좋은 결과를 가져야지 하고 넘어간다. 이렇게 살고 있다. 모든 상황들이 남들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다 다른 사람인데,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으로 나이가 들면 다들 이럴거야 혹은 네가 경험을 안해봐서 그래.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냥 개짇는 소리로 듣고 있다. 너무 오랬동안 그 개소리가 내 인생에 그림자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디안보다는 나은 상황이 된 것 같다. 디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고, 힘든일이 생기면 기댈 수 있다. 안 좋은 상황에 살살 건드리며 남의 불행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닌, 내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아파해주고 약 발라주는 그런 사람과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좋다.
최근에 만난 원가족은 안타깝게도 내 아픔엔 관심이 없다. 내 기쁨에도 별 관심이 없다. 어쩌면 나도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관심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좋은 가족이 못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받아보지 못한 내리 사랑을 어찌하여 아리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다행히 내가 자식의 입장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족같지 못한 툭치면 떨어지는 다 말라버린 접착력의 풀같은 자매의 관계가 어느 한 순간 어떤 계기로 좋은 딱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었던 거지. 지금은 갖고 싶지 않다. 별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이아 원석인 줄알았는데 겨우 자수정 원석 정도일 줄이야. 뭐 그런거지. 자수정 원석에 다이아몬드 장비를 쓸 필요는 없다.
싫고 짜증나고 해결안되는 것들엔 관심과 애정을 거두는 것이 좋다. 관심과 애정, 시간 이 모든 것은 돈이다. 귀하디 귀한 것은 그에 맞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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