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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생활과 고양이/고양이 앞에 물고기들🐟

알비노 코리도라스의 장례식

by catking2002 2024. 5. 1.

물생활을 하면서 어떤 물고기를 어항에 넣을까 고민하는 건 생각보다 신중한 선택이다. 물고의 수명은 짧게는 3일에서 15년까지 다양하다. 물론 20년은 거뜬하게 사는 녀석들도 있다. 3일의 경우, 물생활 초보들이 물을 잡지 못해서 어항 전체를 용궁 급행으로 만드는 경우를 뜻한다. 며칠 전에 소일반 뾰족달팽이반이었던 바닥재를 샌드로 바꿨다. 그러면서 여과기를 통여과로 바꾸는 여러 시도를 했는데 4년 정도 시간을 함께 했던 알비노 코리도라스 녀석이... 용궁으로 갔다.

파스타통을 개조해서 여과재를 가득채워 어항을 쾌적하게 해주려 했던 건데, 파스타통 여과기와 어항 벽면에 끼어서 사망한 것이다. 아침에 맑아진 어항을 보며 커피 한잔 꼴깍 넘기고 어항 3면을 감상하다가 발견했다. 흑

우리 알비노 코리는 알을 참 잘 낳던 물고기였다. 유어 시절엔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데려왔고, 2년 정도 지나니 몸통이 통통해졌었던 코리. 전셋집에서 집을 사서 우리 집으로 온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알비노 코리가 용궁으로 가다니. 여과시스템을 바꿀 때 보통 물고기를 다 빼고 하는 게 정석인데, 물고기들이 눈치껏 피하겠지 하다가 이런 사고가 났다.

알비노 코리의 장례는 내 어항 물고기들과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내 어항은 2자 어항이고 손바닥만한 디스커스가 메인인 어항이다. 그 안에 하층에 코리들이 살고 상류엔 구피가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 부엌 쪽엔 3자 거북이항이 있다. 배우자가 운영 중인 거북이항에는 현재 5마리의 거북이와 여러 마리의 시클리드 물고기가 살고 있다. 알록달록 평화로운 내 어항과 달리 약간 사납고 생존을 보여주는 그의 어항에 내 물고기가 퐁당하고 수장되는 것이 장례식이다. 
보통 물생활에서 용국으로 가는 것은 변기에 물고기를 넣는 것인데, 우리집은 거북이항에 죽은 물고기를 넣는 것으로 대체된다. 물론 이건 내 어항 기준의 장례식이다. 배우자의 어항 속 장례는 거북이가 알아서 진행하기에 손대지 않아도 된다. 
여하튼... 알비노 코리는 거북이항에 넣어졌고 1시간 정도 시간을 두었다. 그런데 꼬리지느러미 빼고 상태가 그대로였다.

시간을 두고 관찰하니 코리도라스의 단단한 머리 뼈를 거북이가 어찌할 수 없던 것이었다. 내 코리는 약 6cm까지 컸던 아주 큰 물고기였다. 그래서 이대로 두면 거북이항에 수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물론 더 둬도 되지만) 배우자가 가위를 들고 나섰다. 나한텐 말하지 않고 진행한 건데, 좀 잔인하지만 물고기를 절반으로 자르고 어항에 다시 넣었더라. 거북이항에 넣는 장례에서 다시 건져 절반 자르다니 흠...
그런데 절반 자르고 보니 코리 안에 알이 엄청 있었다. 가슴이 너무 철렁했다. 환수를 크게 하면서 코리들이 산란하겠구나 했는데, 역시 알비노 코리도 산란을 준비 중이었던 거다.

우당탕탕 장례식은 요란하게 진행됐다. 거북이들은 냠냠 내 코리를 먹어치웠다. 그렇게 용궁으로 간 코리. 안녕.

To. 알비노 코리에게
네가 없으니 어항에 크게 물 튀기는 물고기가 없어. 물멍 하면서 네가 튀긴 물을 맞던 게 추억이 되다니. 코리의 수명은 10년에서 15년인데 생각보다 빨리 가버려서 남아있는 콜든 스트라이프 코리랑 브론즈 코리를 다시 보게 되더라. 바닥에서 잘 놀라고 샌드로 바꿔주고 사료만 골라 먹고 아가미로 샌드를 뱉는 널 보면서 바닥재 잘 바꿨다고 생각한 게 지난주인데 말이야. 물고기는 용궁으로 빨리 가니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정든 걸 보면 그냥 지어줄걸 생각도 들어. 골든 스트라이프 코리는 4마리지만, 넌 한 마리밖에 없던 알비노 코리였으니까.
아무튼. 안녕 알비노 코리야. 수족관에 들러서 알비노 코리를 봐도 당분간 네 생각이 나서 데려오지 못할 것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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